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훈민정음 언해본 (문단 편집) == 내용 == [[조선]]의 4대 왕 [[세종대왕]]은 [[훈민정음]]을 최초로 창제하고 [[훈민정음 해례본]]을 반포한다. 그러나 이 해례본은 [[한문]]으로 작성되어 있어 한문에 조예가 있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었다.[*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처음 한글을 소개하는데 한글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. 영어를 모르는 어린이에게 영어를 처음 가르치려면 영어는 큰 글씨로 한 마디만 써놓고 한국어로 뜻이나 발음을 자세하게 써놓는 것과 같다.] 이후 7대 왕 세조가 즉위한 후 세종 때 만들어진 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해례본의 서문과 예의(例義) 부분을 한문에 무지한 사람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완전히 우리말로 언해, 윤문, 번역하고, 훈민정음으로 기록하여 전국에 배포한 책이다. 우리가 일반적으로 훈민정음이라 하면 떠올리는 "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" 로 시작되는 문장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. 따라서 이 말이 번역된 문장이라면 세종이 직접 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. 하지만 훈민정음 반포(1446년)부터 훈민정음 언해본 간행(1459년)까지의 간격이 겨우 13년에 불과하기에[* 그 사이 [[문종(조선)|문종]]의 죽음, [[계유정난]]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있기는 했지만 언해본 간행 당시까지도 세종 치세에 등용된 신하들이 많이 남아있었다.] 신하들 사이에서 [[구전]]으로 이어졌거나 세종으로부터 직접 듣고 기억하는 신하가 있었다면 세종의 말을 번역 없이 훈민정음 언해본에 그대로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. [[서강대학교]]에 소장된 1459년 초간본 [[월인석보]] 권1에 수록되어 있는 훈민정음 언해본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, 훈민정음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로 간주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